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아이 / 독거청년 가슴속 이야기.
그녀의 이름은 '콩이' 입니다.
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20년 8월 15일.
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습니다.
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한여름의 태양 빛.
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어 찜통더위를 식혀주던 날이었죠.
저에게는 가족이 두 명 있었습니다.
믹스견…. 일명 시고르 잡종이라 불리던 아가씨 ‘콩이’와 장모 치와와 ‘미남이’….
광복절이었던 그날. ‘콩이’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.
누구보다 똑똑했고 애교 넘치던 그녀였기에 믿을 수 없었습니다.
엉뚱할 때도…. 미운 짓 할 때도 많았지만 넘치는 애교와
아빠의 기분을 너무도 잘 파악하던 그녀였고
남동생 ‘미남이’를 자신의 새끼인 것처럼 너무도 잘 챙기던
그런 믿음직한 첫째 아이였었죠.
그런 그녀가 급성 신부전증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돌아올 수 없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습니다.
건강했던 그녀 역시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.
하루하루 기운이 빠지고…. 아픈 곳도 많아지고….
급기야 결국.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
가냘픈 신음과 힘든 호흡….
부랴부랴 응급실로 향했을 때는 이미 손 쓸 틈이 없었죠.
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
왜 이리 가슴이 아프던지….
조금만 더 일찍 병원을 갔더라면
조금 더 저와 함께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
억측도 해보았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
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.
콩이의 장례식
미동도 없이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를 받아들고
장례식장으로 향했고
화장 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
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었는지….
그리고 사랑했다고 사랑했다고….
그녀의 귓속에 수백 번도 더 말해주며
뜨거운 눈물을 계속 흘렸었죠.
그녀의 유품과 평소 좋아하던 간식들을 함께 화장하면서
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하던 간식이라도 좀 더 챙겨줄걸,
좋아했던 산책을 좀 더 많이 시켜줄걸….
그리고 그녀의 예쁜 모습을 좀 더 많이 남겨놓을걸….
수많은 후회를 하며 저를 자책했었습니다.
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인데도
이 글을 작성하면서 코끝이 시큰하네요.
지금 제 곁에는 ‘콩이’도 ‘미남이’도 없지만
든든한 세 아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.
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세 아이들을 위해서
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.
그리고….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서
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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